a summer cold
11월의 밤바다
날고싶다!
2011. 11. 2. 11:25
표현하지 않은 마음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포장까지 해놓고 건네지 않은 선물과 같다.
가는 실에 묶여 천정에 매달려 있는
나무로 만든 새
나사로 이어붙인 뭉툭한 날개검은 점의 장식 같은그 내면을 알 길 없는 눈
혀도 감추고 있지 않은 부리공기조차 가를 수 없는 슬픈 이마를 하고서
자신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는나무로 만든 새
낮 동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한다
함께 실에 묶여 있는
나무로 만든 말
나무로 만든 돌고래
나무로 만든 나비의
인간들을 흉내 낸 비웃음을 들으며
언젠가 한번 하늘을 날아볼 것이라고
나사가 녹슬기 전에
불과 망각 속으로 던져지기 전에
여기서 어딘가로 떠나볼 것이라고
작은 바람만 불어 들어와도
깃털도 없는 날개를 움직여 본다
어느 날이었지 모두 잠든 밤
한 줄기 강한 바람이 창문을 열어젖히자
나무로 만든 새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실을 끊고서
힘껏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지
어둔 밤의 대기 속으로
둥근 지붕들과 검은 언덕들과 바다 위를 날아
고통의 문신 같은 별들을 향해
물결무늬 진 어깨로 바람을 가르며
날고 또 날았지
눈동자는 생기를 찾아 별빛을 반영하고
부리를 열자 심장에 가둬 두었던 노래가 흘러나왔지
대양을 건너는 철새들의 무리가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
아침에 잠을 깬
나무로 만든 말
나무로 만든 돌고래
나무로 만든 나비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옆에 매달린 나무로 만든 새에게서 나는
바람과 소금의 냄새를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지
그 내면을 알 길 없는
검은 점의 눈을 하고 있지만
나무로 만든 새그 별들의 기억이 속눈썹 아래 박혀 있었지
가는 실에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지만
-류시화
11월이 좋아..
11월의 바다는 정말 끝내주거든..
웬지 모를 깊음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