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ching Silence

나무로 만든 새

날고싶다! 2011. 5. 2. 15:29
 
 
 
 
가는 실에 묶여 천정에 매달려 있는/ 나무로 만든 새/

나사로 이어붙인 뭉툭한 날개/ 검은 점의 장식 같은/

그 내면을 알 길 없는 눈/ 혀도 감추고 있지 않은 부리/

공기조차 가를 수 없는 슬픈 이마를 하고서

 

언젠가 한번 하늘을 날아볼 것이라고/ 나사가 녹슬기 전에/

불과 망각 속으로 던져지기 전에/ 여기서 어딘가로 떠나볼 것이라고/

작은 바람만 불어 들어와도/ 깃털도 없는 날개를 움직여 본다

 

자신이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는/ 나무로 만든 새/

낮 동안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혼자서 나는 연습을 한다/ 함께 실에 묶여 있는/

나무로 만든 말/ 나무로 만든 돌고래/

나무로 만든 나비의/ 인간들을 흉내 낸 비웃음을 들으며

 

어느 날이었지 모두 잠든 밤/ 한 줄기 강한 바람이 창문을 열어젖히자/

나무로 만든 새/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실을 끊고서/ 힘껏 날개를 펼치고 날아갔지/

어둔 밤의 대기 속으로/ 둥근 지붕들과 검은 언덕들과 바다 위를 날아

 

고통의 문신 같은 별들을 향해/ 물결무늬 진 어깨로 바람을 가르며/

날고 또 날았지/ 눈동자는 생기를 찾아 별빛을 반영하고/

부리를 열자 심장에 가둬 두었던 노래가 흘러나왔지/ 대양을 건너는 철새들의 무리가/

경이에 찬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지

 

아침에 잠을 깬/ 나무로 만든 말/

나무로 만든 돌고래/ 나무로 만든 나비/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옆에 매달린 나무로 만든 새에게서 나는/

바람과 소금의 냄새를/ 어렴풋이 맡을 수 있었지

 

그 내면을 알 길 없는/ 검은 점의 눈을 하고 있지만/

나무로 만든 새/ 그 별들의 기억이 속눈썹 아래 박혀 있었지/

가는 실에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지만

 

// 류시화

 

 

 

 

 

 

 

 

 

 

 

 

 

 

'Reaching Silenc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짧은 시간동안  (0) 2011.05.27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0) 2011.05.11
사랑합니다,,,,  (0) 2011.04.21
빈둥지  (0) 2011.04.14
민들레  (0) 2011.0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