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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 ![]()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문학동네 |
이를테면 내 귓불을 자주 만져주는 사람에게 가서 어려운 사랑을 고백한 적도 있다. 사람은 상대가 좋아지지 않으면 절대로 그 사람의 귀를 만지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오랫동안 실험한 영역이다. 가만히 귀를 만져주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좋은 냄새가 날 것이라고. 조용히 타인의 귓불을 만져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머지않아 서로의 귀에서 나는 연한 냄새를 알아보는 미물의 관계가 되어갈 공산이 크다. 서로의 작은 귓불에 동감의 본질을 표현하게 된다. 서로 귓불을 만지는 사이는 금방 연인을 넘어선다. <중략>
누군가 내 귓불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만져주었을 때, 나는 딸꾹질을 했다. 이제 그만 (그 사람을 위해서) 울음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귓불」 중에서 - 알라딘
누군가 내 귓불을 처음으로 따뜻하게 만져주었을 때, 나는 딸꾹질을 했다. 이제 그만 (그 사람을 위해서) 울음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이다.
「귓불」 중에서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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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정夢精이 육체의 정열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그 육체를 사용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몽정은 자신의 몸을 종이에 싸서 물에 띄우듯 먼 곳으로 보내보는 연습이다. 몸 위에 목선木船을 띄우듯, 몽정은 다른 몸을 건너온다. 어느 몸으로 들어가 나는 몽정을 하는 것인가, 몽정은 나의 외가外家다. <중략>
몽정은 타인의 몸과 나누는 성교가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벌이는 성교다. 산달을 채우는 산모가 자신의 육체와 밀애를 나누며 아이와 함께 있듯이 몽정은 자신의 몸을 그리워하며 몸을 지나간다. 몸에 잔설殘雪을 남긴다. 불타버린 절의 재처럼, 희고 결별한 듯한 잔설을 몸에 남긴다. 녹는 뿔에 올라탄 기녀처럼, 산중山中을 헤매는 선승의 입술 위에 내려앉는 흰 나비처럼. 「몽정기」 중에서 - 알라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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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골鎖骨에 빗물이 고이는 사람이 있다. 마르고 아름다운 몸의 선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보통 비만인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몸의 리듬은 선과 골격의 리듬이다. 물론 풍만한 몸의 소유자에게서도 선의 미는 발견되기도 한다. 선조들은 오히려 이 풍만함으로부터 선의 매혹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것은 대체로 그들의 균형에 대한 미의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선의 리듬이라는 것은 비균형에서 온다고 믿는 편이다. 예상할 수 없는 선의 비선형성이 주는 매혹, 하나의 육체가 가지는 가장 매혹적인 균형은 역설적이게도 억측이 보기 좋게 들어맞을 경우에 생겨난다. 육체에게 바치는 우리의 탄성은 도저히 그곳으로 뻗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비율을 입고 태어나는 곡선의 질감이다. <중략>
육체는 선으로 이루어진 풍경이다. 시詩가 가장 부적절한 순간에 언어에게서 태어나는 하나의 육체라면 뛰어난 산문散文은 그 육체를 감싸며 겉도는 하나의 선이다. 몸의 선은 그 자체로 숨 쉬는 비율이며 튀어 오르는 정밀한 뼈들을 감추고 있는 이미지다. 쇄골은 육체가 기적적으로 이루어낸 선線의 풍경이다. 「쇄골」 중에서 - 알라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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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날개가 움직인다.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인다. 꽃잎 위에서, 사슴의 발등 위에서, 벤치에 앉아 모든 것에 시선을 주고 있지만 어떤 곳에도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노인의 지팡이 위에서, 이곳과 저곳 두 개의 목소리를 가진 채 잠들어 있는 누군가의 흑암 같은 눈두덩 위에도, 나비는 앉는다. 숨을, 쉴 때마다, 나비의 날개뼈가, 움직인다. <중략>
나비의 폐에 관해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고집스럽게 하나의 숨결에 대한 회복이며, 하나의 이미지가 자신의 숨을 불러 모아 침묵하려는 태동이며, 하나의 폐에 닿으려는, 우리의 언어가 가지는 향수병이다. 모든 시는 향수병을 앓는다. <중략> 행간으로 달리는 열차는 나비를 가득 싣고 달린다. 시는 행간行間에서 태어나는 나비의 서식지다. 「날개뼈」 중에서 - 알라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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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하는 눈동자는 몸을 배웅한다. 마치 불면이란 잠들지 않기 위해 눈동자가 몸 곳곳으로 그 시력을 배달하는 일이듯, 몸에게 그 시간을 허락해주도록 눈동자는 특별한 의문과 꿈을 제공했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말한 ‘상응’의 방식이거나 엘리엇이 시와 시극을 연대시키고자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마지막까지 역설한 언어와 몸에 관한 친화력에 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령 이렇게 보들레르는 중국인들처럼 고양이의 눈에서 시간을 본다고 했다. <중략> 꿈이란 한 몸에서 서로 다른 눈들을 가지고 만나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눈동자가 우리 몸에 숨긴 유령의 배후이기도 하다. 몽상은 눈동자의 유령이기 때문이다. 「눈동자」 중에서 - 알라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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