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영 - 우리
내 순정에 다쳤을 첫사랑 그대에게.
이제야 그대에 대한 무수한 원망을 내려놓고 비로소 참 많이 미안했었다.
참회할 용기가 난다.
미안하단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난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자만이 뿌리 깊었나, 아니다 자기연민이 독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가는 건 주름만이 아니다.
살면서 홍역처럼 반드시 거쳐야 할 경험과 남과 별다르지 않게 감당했어야 할 상처들이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그대와 주고받았던 모든 것들이 마냥 별스러워 엄살인 줄도 모르고 악을 쓰듯 독하게 킁킁거렸다.
그때 그대는 참으로 냉정했었다.
원망스러웠던 그 순간이 이제야 맞춤 맞은 순리였음을 알았다.
나를 버려주어 고맙다, 그대.
순간 이 글을 쓰며 겁이 난다.
나만큼 설레지 않고 나만큼 애타하지 않고 나만큼 절절하지 않은
그대에게 나는 늘 이런식으로 상처를 주었다.
잘났나봐, 무시하나봐, 그런 직설을 내려놓고, '고맙네,정말' 웃으며 칼 주는.
꼬여진 실타래처럼 정말 난감하게 엉켜서 그대를 몰아붙였던 한때를
그대여 지금은 떠올리지 마라.
그리하여 이 글을 읽지 않고 서둘러 덮지 마라.
세월이 변하듯 사람도 변한다.
나는 변했다.
그대.
이제 엉킬 기운도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들어라,
고맙다, 정말 버려주어.
//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내 드라마 주인공은 참으로 상대에게 용기 내어 잘도 묻는데
나는 그대에게 묻지 못했다.
내 잘못을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어리석다.
사랑한 대상을 미워한 대상으로 바꿀 오기는 있으면서.
모든 겨울처럼 밤이 깊은 겨울이었다.
며칠째 몇 주째 연락이 안되던 그대를 찾아나섰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얇은 추리닝 바람이었다.
20년간 나는 그때의 내 행색을 다급함이라고 애절함이라고 포장했지만,
이제야 인정한다.
//
미안하다,그대여.
이제야 고백건데, 나는 그대에게 바쳤던 순정을 스무 살 무렵에 이미 접었었다.
그런데 왜 말 안 했냐고?
나는 마음이 변하는 게 큰 죄라 생각했다.
그 어리석은 생각은 참으로 오래 갔다.
그래서 그대를 괴롭히고 그대보다 나를 더욱 괴롭혔다.
그대와 헤어지고 누군가를 다시 만나서도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 그대에게 바쳤던
순정만을 내세우며 유치한 대사를 남발했다.
나에겐 네 자리가 없어.
//
그대여,
이제부디 나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라.
사랑에 배신은 없다.
사랑이 거래가 아닌 이상,
둘 중 한 사람이 변하면 자연 그 관계는 깨어져야 옳다.
미안해할 일이 아니다.
마음을 다 잡지 못한 게 후회로 남으면
다음 사랑에선 조금 마음을 다잡아볼 일이 있을 뿐, 죄의식은 버려라.
이미 설레지도 아리지도 않은 애인을 어찌 옆에 두겠느냐.
마흔에도 힘든 일을 비리디 비린 스무 살에,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가당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린 모두 오십보 백보다.
더 사랑했다 한들 한 계절 두계절이고,
일찍 변했다 한들 평생에 견주면 찰나일 뿐이다.
모두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다 괜찮다.
이제 나는 다시 그대와 조우할 날을 기다린다.
그때는 그대와 웃으며 순정을 포장한 가혹한 내 행동들을
맘 아프게가 아닌 웃으며 나눌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만약 볼 수 없다면, 잘 살아라, 그대.
그리고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나는 행복하다.
첫사랑에게 바치는 20년 후의 편지
"버려주어 고맙다"
.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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